소식 목록으로

[특별기획] 한중 협력의 현장을 가다...③ 한중을 잇는 사람들, 조선족의 힘

오늘날 한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은 복합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게는 같은 뿌리를 가진 동포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고도 거리를 두게 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명칭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족 동포는 중국 내 소수민족…

[특별기획] 한중 협력의 현장을 가다...③ 한중을 잇는 사람들, 조선족의 힘
2022년 9월 3일 지린성 옌지시에서 개최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 경축대회 장면.
2022년 9월 3일 지린성 옌지시에서 개최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70주년 경축대회 장면.

오늘날 한국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은 복합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게는 같은 뿌리를 가진 동포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고도 거리를 두게 되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명칭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족 동포는 중국 내 소수민족이라는 범주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동체다.

그들은 한민족 근현대사의 고통과 생존, 이동과 정착, 그리고 끈질긴 연대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조선족’이라는 명칭은 1950년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공식 용어다.

연변 지역의 민족자치 체제가 정비되고 ‘연변조선족자치주’가 출범하면서 조선민족들은 중국의 공식 소수민족 체계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분류됐다. 하지만 제도적 명칭이 그들의 출발점은 아니다. 그 뿌리는 19세기 후반 조선 말기의 비극적 역사, 그리고 국권 상실기의 절박한 현실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대 이후 흉년과 빈곤, 사회적 혼란을 피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던 민초들, 그리고 국권 침탈 이후 독립의 뜻을 품고 망명길에 올랐던 지사들이 동북3성에 뿌리를 내리며 오늘의 조선족 사회가 형성됐다. 이들의 정착은 나라를 잃은 시대에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필사(必死)의 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족 동포의 역사는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용정과 연변 일대에 세워진 서전서숙과 명동학교는 민족의식을 키우며 독립운동의 인재를 길러낸 교육의 거점이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봉오동과 청산리의 승전도, 동북3성 곳곳에 흩어져 살던 조선인 공동체가 독립군의 피난처가 되고 식량과 물자를 대며 생명을 걸고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월드옥타 중국지역 회원들의 모임이 지난달 중국 쿤밍에서 열렸다.
월드옥타 중국지역 회원들의 모임이 지난달 중국 쿤밍에서 열렸다.

곽승지 전 연변과학기술대 교수는 저서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인간사랑刊)에서 “조선족 동포들은 한민족이 겪은 슬픈 역사의 가장 적나라한 체험자”라며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 및 국공내전 시기, 동서 냉전시대에 누구보다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으로써 이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적었다.

해방 이후에 그들은 중국 공민으로 살아가면서도 한민족의 언어와 문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중국 사회의 제도권 안에 편입됐지만, 학교와 언어, 생활문화를 지켜내며 정체성을 이어가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족 동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겪어낸 생존의 역사와 정체성의 고투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조선족 동포는 역사의 고비마다 한중 관계를 잇는 실질적인 가교 역할을 했다.

강행구 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 부총영사는 “한중 수교 이전부터 조선족 사회는 사실상 양국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다리’ 역할을 했다”며 “한국의 발전상과 사회 변화, 경제적 역동성을 중국 사회에 전달하고, 반대로 중국의 현장과 분위기를 한국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매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변화된 모습을 중국 사회에 생생히 전한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조선족 동포가 있었다는 점은 손에 꼽을만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통역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전달하는 ‘문화의 통역자’ 역할도 했던 셈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이들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졌다. 삼성, LG,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할 때, 조선족 동포는 언어와 문화, 제도와 관행의 차이를 메우는 핵심 연결자였다.

지난 1월 16일 개최된 월드옥타 베이징지회 송년의 밤 행사에서 차세대 회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 월드옥타 베이징 지회 회원들 절대 다수가 조선족기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 1월 16일 개최된 월드옥타 베이징지회 송년의 밤 행사에서 차세대 회원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 장면. 월드옥타 베이징 지회 회원들 절대 다수가 조선족기업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동북3성이 특별한 이유는 숫자로도 드러난다. 총영사관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약 170만 명에 이르는 조선족 동포 가운데 80% 이상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3성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연변조선족자치주는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제도적으로 보존해 온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동북3성이 한민족의 역사적 기억이 남아 있는 공간이자, 지금도 활발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된 지역임을 보여준다.

안성규 아산(선양)부동산개발 회장은 “한국 기업이 동북3성에 진출할 때 느끼는 심리적·언어적 장벽이 다른 중국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 역시 이들이 일궈 놓은 공동체와 네트워크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문화 교류에서도 조선족 동포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가장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중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통로가 됐다.

김난희 월드옥타 선양지회장(선양김희동상무유한공사총경리)은 현재 조선족 사회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대교체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모 세대가 생존과 정착, 공동체 유지에 힘을 쏟았다면, 오늘의 젊은 조선족 세대는 보다 넓은 무대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른바 ‘조선족 뉴 제너레이션’은 고등 교육과 글로벌 감각을 바탕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은 물론 한국과 미국, 일본 등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재한 조선족 사회에서도 이 바람은 감지된다. 김호림 전국동포총연합회 회장은 “이제 조선족 젊은이들은 더 이상 단순한 언어 중개자가 아니다. 인공지능, 바이오, 금융, 문화 콘텐츠, 플랫폼 산업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양국의 장점을 연결하는 기획자이자 네트워크 구축자로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뉴제네레이션의 강점은 ‘이중 문화적 정체성’에 있으며 한국과 중국 두 사회의 언어와 정서를 동시에 이해하면서 갈등이 아닌 조율의 자산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중 협력이 과거의 제조업 중심 모델을 넘어 첨단기술, 디지털 경제, 문화산업 협력으로 확장되는 지금, 조선족 청년 세대는 그 변화의 중요한 주체로 떠오르고 있음을 취재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조선족을 단편적인 미디어 이미지로 소비하거나 ‘저임금 노동자’ 혹은 ‘낯선 타자’의 프레임 속에 가두려는 시선이 존재한다. 이는 조선족 동포가 걸어온 역사와 기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왜곡된 인식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강행구 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 부총영사는 “조선족 동포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의 한중 협력을 떠받치는 살아 있는 인적 자산이며 앞으로의 동북아 협력 구상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족 동포의 역사는 곧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이며 생존을 위해 국경을 넘었지만 끝내 언어와 문화, 공동체를 지켜낸 사람들의 기록이다. 동시에 그것은 독립운동의 역사이자 산업화와 세계화, 그리고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관계의 성장을 뒷받침해 온 실천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 2024년 9월말 국내 전국동포총연합회가 주최한 제1회 한민족예술단 대통합축제에는 500여명의 조선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지난 2024년 9월말 국내 전국동포총연합회가 주최한 제1회 한민족예술단 대통합축제에는 500여명의 조선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출처: 재외동포신문 · 원문 보기